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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명당(明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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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3  13: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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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당대의 명 지관(地官)으로 알려진 갈처사와 숙종에 얽힌 이야기다.

조선의 제19代 임금 숙종대왕(1661~1720)은 백성들의 삶을 직접 살피고자 내관 한사람만을 데리고 민정시찰을 자주 다니며 숫한 화재를 남겼다.

어느 날 평복차림으로 과천의 갈현동을 지나갈 때 더벅머리의 한 아이가 물이 흐르고 있는 시냇가에서 관을 묻기 위해서 땅을 파고 있었다.
 
이 광경(光景)을 본 임금은 괴히 여겨 가던 길을 멈추고 다가서며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 아이는 울면서 자기의 어머니가 오늘 아침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처사란 지관이 여기에다 어머니 묘를 쓰라고 해서 지금 땅을 파고 있다고 한다.

숙종은 아주 고약한 지관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갈처사란 분이 어디 사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갖고 다니던 지묵으로 그 아이에게 쪽지 하나를 적어 주고,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곧 바로 수원성으로 가서 수문장에게 이 서찰을 보여드리라고 한다.

이 아이는 영문도 모른 체 어안이 벙벙했지만 선비가 써준 서찰을 들고 수원성으로 가서  수문장에게 그 서찰을 보여주었더니 임금의 어명이 아닌가! 이 아이에게 쌀 300석을 내주고 이 아이의 어머니 장례식을 잘 치러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임금은 선비차림 그대로 갈처사가 살고 있다는 갈현동 그 산동네 중턱에 있는 외딴 집을 찾아간다.

주인장 계시오? 하고 묻자 나이 들어 보이는 영감이 밖으로 나와서 댁은 뉘시오? 하고 묻는다. 임금은 신분을 속이고 지나가던 선비인데 그대가 갈처사란 분이오? 하고 묻는다.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라고 하자. 선비차림의 숙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서 장난을 쳐도 정도껏 해야지 어찌 나이 어린 아이와 죽은 사람을 갖고 그렇게 장난을 칠 수 있습니까? 시냇가에 묘 자리를 쓰란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그친다.

그러자 갈처사는 이 선비에게 잘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그러면서 그 자리가 얼마나 좋은 명당자리인데 ~그래!~ 그 시냇가에 내가 봐준 묘 자리는 관이 들어가기도 전에 쌀이 300석이 생기는 명당자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숙종은 얼굴 표정을 숨기고 다시 묻는다. 그럼 자네는 그렇게 터를 잘 보면 저 아래 동네에 안 살고 왜 이 산 중턱 외딴집에 혼자 사느냐? 고 묻는다.

그러자 갈처사는 또다시 큰소리로 그것 참! 잘 모르면서 자꾸 귀찮게 한다.고 하면서 저 아래 부자로 사는 놈들은 남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횡령하고. 고의로 부도내고. 탈세하고. 공금을 쌈짓돈처럼 쓰는 놈들에다 온갖 나쁜 짓거리는 다하고 사는 놈들인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래도 내가 사는 곳은 나중에 임금이 다녀갈 곳 이라고 자랑하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힐 정도로 놀란 숙종은 또 다시 그럼 그 임금이 언제쯤 여길 다녀 가냐고 묻는다. 그러자 갈처사는 몇 년 전에 풀어 둔 게 있다고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가 먼지 묻은 종이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아뿔싸 그날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갈처사는 급히 밖으로 나와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임금님을 못 알아 봐서 죽을죄를 졌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한다. 임금은 갈처사를 일으키고 칭찬을 하면서 나의 묘 자리를 미리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하여 갈처사는 숙종이 죽은 뒤 묻힐 왕릉 자리를 잡았는데 지금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한 서오릉 중에 ‘명릉’이 바로 그 자리라 한다. 명릉은 서오릉 중에서도 가장 명당자리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는데 서오릉은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다섯 능을 말하고 있다.

아무튼 숙종대왕은 고마움의 뜻으로 갈처사에게 삼천 냥을 하사 하였으나 노자로 삼십 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얼마 전 풍수지리학적으로 한반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럽다는 충남 예산군에 있는 남연군 이구의 묘를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조선 말기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부친이었으니 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곳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듯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기(旣)설치되어 있던 가야사의 금탑자리를 불태워 버리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이구의 무덤을 이장하면서 까지 묘를 썼던 것으로 봐서 그들의 시각으로는 명당 중에 명당임이 틀림없었나 보다.

그 시대의 유명한 지관이 추천 했다고 하여 좌청룡 우백호를 우상화했던 그는 서구의 열강들로부터 조선의 안위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복음을 전파하려고 온 신부님과 선교사님들까지 처단하며 쇄국정책을 초강경으로 펴 나갔지만 하늘의 관문을 피해가지는 못했나 보다.

이하응의 뜻 데로 이장한지 7년 후에 낳은 아들이 왕이 되었고(조선 26대: 고종)이어서 손자(조선 27대 순종)가 왕이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과연! 나라와 백성을 일본 놈들의 손아귀에 팔아넘긴 당사자로써 삶을 살다간 왕이 나온 자리가 명당이란 말인가!

역사는 참! 아이러니 하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명당은 “과정이다” “결과다” “허상이다”라는 결론과 명분도 없이 자기들만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봉황이라는 놈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하기만 하다.

성서에 의하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시는 어느 목회자의 말씀이 오늘따라 무섭게 들려온다.

봉황이라는 자들이여! 명심하시오.

죽어서 누울자리 걱정보다는 무서운 심판에 대비해야 할 것이요!
그 관문을 통과할 때 뇌물과 아부는 물론 속임수로는 어려울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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