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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 ‘갈미봉의 혼인’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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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5  15: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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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세종시 연서면에는 갈미봉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산줄기가 있다.

쌍류리와 고복리와 청라리를 품고 좌우로 뻗어 내리며, 그 사이에 들어선 마을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바로 그곳에서 흐르기 시작한 쌍류천이 도중에서 만난 월하천과 같이 내려가면서 졸졸거리는데, 마치

우리는 미호천을 만나서 흐르다
저쪽에서 흘러나온 금강과 합쳐
넓고 넓은 바다를 보러 간단다

넓은 세계로 나가는 기쁨을 노래하는 것 같다.
갈미봉은 그것이 만족스러운 듯, 씽긋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어찌 된 일인가. 밤에 내려오던 신들이 대낮에 내려오지 않는가. 

“어찌 된 일입니까?”

갈미봉이 놀라서 물었으나 천신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하늘의 옥황상제는 해와 달만이 아니라 넓은 하늘의 별들도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매우 바쁘다. 그래서

“갈미봉 자락의 여신과 혼인하는 자에게 천하를 맡기겠다.”

하늘에서 세상을 살피시는 옥황상제는, 갈미봉 자락에 살면서 짐승들과 초목을 소중히 보살피는 낭자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낭자와 짝을 이루는 신에게 천하의 통치를 맡기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신들은 앞을 다투어 낭자를 찾아가더니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뒷마당의 장작을 다 팼습니다.”
“텃밭을 갈고 고랑을 쳤습니다.”

낭자의 뜻을 얻으려고 별의별 짓들을 다했다.
그런데도 낭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천신들은 어떻게든 낭자의 뜻을 얻고야 말겠다며 낭자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것을 본 낭자의 아버지가

“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당당한 태도이고 남에 대한 예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낭자가 갈미봉에 올라 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와 능력과 같은 신을 짝으로 정하겠습니다.”

배필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서로 잘 어울리는 능력을 제시했다. 그러자 천신들은

돌멩이를 번쩍거리는 보물로 만드는가 하면,
하늘을 나는 새를 불러 앉히기도 하고,
저고리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가 하면,
콧김으로 비바람을 불러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낭자는 감동하는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낭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화를 내는 신도 있었다. 그것을 본 낭자가 손수 빚은 술과 안주를 달빛이 아름다운 갈미봉에 차리고 천신들을 불러 대접했다, 그리고 둥근 달이 중천에 이르자
 
“여러분들은 왼쪽 산줄기로 내려갔다가 쌍류천이 흐르는 계곡을 타고 다시 올라오세요. 나는 오른쪽 산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올라오겠습니다.”

갈미봉의 좌우 산줄기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자는 제안을 했다. 그 말을 들이 신들은 서둘러 오른쪽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면서

“얼마나 빨리 걷는가를 보려는 거야!”

빨리 걷는 것이 낭자의 마음을 얻는 길이라며 서둘러 걸었다. 그런데 창기는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낭자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귀를 쭝긋이 세웠다. 그리고 산줄기를 따고 내려가는 낭자의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발을 내디뎠다. 낭자의 발자국 소리가 빠르면 빨리 내딛고 느리면 천천히 내디뎠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추면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낭자가 쌍류천에 오른발을 내려놓으려 할 때, 창기도 그 쌍류천에 왼발을 살짝 올렸다. 얼마나 살며시 올렸던지 물의 흐름이 멈추는 일 없이 그대로 흐른다.

“물위를 바람처럼 걷는다는 보법이네요.”
낭자가 창기의 보법을 알아보고 싱긋 웃었다.
“아닙니다. 놀라실까봐, 살짝 디뎠을 뿐입니다.”

창기는 겸손히 답하고 낭자의 뒤를 따랐다. 조금 전까지는 서둘러 걷는 신들의 철부덕거리는 소리가 계곡에 가득했으나, 둘이 걸어 오르는 계곡은 바람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풀숲의 벌레들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둘의 모습을, 벌써 봉우리에 오른 신들이 내려다보는데, 창기가 한발 뒤져서 걸을 뿐, 둘이 내딛는 발걸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돌에 미끌려 비틀거리는 일도 없고, 둘의 숨소리조차 혼자서 내쉬는 것 같았다.

“저렇게 잘 어울리는 쌍이 또 있을까.”

내려다보던 신 하나가 감탄해서 중얼거리자, 다른 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이 갈미봉에 올랐을 때는, 모든 신들이 승천하여 달빛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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