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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 ‘장남평야의 미인대회’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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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4  09: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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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100만평이 넘는 장남평야가, 지금은 세종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선 도시로 변했지만, 옛날에는 먹을거리 풍성한 들녘이었다.

가을바람에 벼이삭이 살랑거리며 황금물결을 이루는 벌판에서 가을걷이를 하던 아저씨가

“이번 잔칫날에는 뉘 집 낭자랑 어울릴 생각이냐.”

땀을 뻘뻘 흘리며 노적가리를 쌓는 조카에게, 보름날 밤에 열리는 잔치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풍년이 들면 신에게 감사드리는 잔치를 열고, 흉년이 들면 신에게 용서를 비는 잔치를 열었다.

그것을 고구려는 동맹이라 했고, 부여는 영고, 동예는 무천이라 했다. 삼한은 아예 소도라는 구역을 정해 놓고 신들이 자유롭게 지내시게 했다.

잔칫날에는 진수성찬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마음에 품었던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 이날 밤에는 남녀노소나 신분을 따지는 일 없이, 마음에 들면 아무하고나 어울려도 된다.

그래야 신들이 기뻐하며 복을 내린단다. 잔치에 참가한 사람들은

오늘 밤이 어떤 밤인지 나도 알고 당신도 알지요.
그대여 이리 오셔서 나와 같이 사랑을 나누세요.

서로 구애하고 사랑하며 밤을 보낸다. 그런 가운데도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기서 힐끔거리는 저 사람에게 가보시지요
지금도 힐끔거리는 저 사람에게 가보시지요

마음 놓고 거절해도 되었다. 그런 생산의 잔지를 치르고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오르면 고을에서 제일가는 미인을 뽑는 잔치를 연다.

잔치에서 뽑히는 미인에게는 천신을 모시는 제사장이 되는데, 그것은 천신의 은혜를 입는 일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래서 딸을 둔 집에서는 잔치가 열리는 날을 학수고대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잔치가 시작되자

“나는 민마루에 사는 꾀꼬리라 합니다.”
“나는 아름골의 진달래라고 합니다.”

곱게 차려 입은 낭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기를 소개하고 방긋하면, 모여든 사람들이 손뼉 치며 환호하며 야단이다. 그렇게 열두 명의 소개가 끝나고, 열세 번째 여인이 무대에 오르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기저기서 쑤군거린다.

“뭐야, 어찌 된 일이야!”

해괴한 일이라며 여기저기서 쑤군거리는데, 할미꽃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에 몸을 싣고 힘겹게 무대에 올라

“나는 도담골에 사는 호박꽃이라 하오.”

자기를 소개하는데 폭 패인 볼이 합죽거린다. 놀란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고, 점잖게 앉아있던 군장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할머니가 지팡이로 무대를 탕탕 찌으시며

“내말을 들어나 보소.”

큰소리를 치는데, 얼마나 날카로운지, 사람들의 고막이 터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날카로운 외침이 어둠으로 사라지자. 할머니가 앞으로 나서며

“얼굴의 주름살은 장남평야에 풍년이 들도록, 뼈 빠지게 일하면서 햇볕을 쐰 흔적이 아니겠소. 그렇게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런 잔치도 여는 것 아니오.”

주름살이 생긴 까닭을 설명하더니, 이번에는 적삼을 들추고, 축 늘어져 배에 붙은 젖을 오른 손으로 받쳐 들며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열셋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린 젖이라오. 이 젖을 빨고 자란 자식들이 열심히 일한 덕택에 풍년이 들었고, 두 아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다 죽었다오. 이 젖이 그런 젖이라오. 그런 이 젖이 어찌 젊은 낭자들의 탱탱한 가슴만 못 하겠소.”

쭈글쭈글 쭈그러진 젖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가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찌그리고 있던 얼굴을 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치마끈을 아래로 내리고 등에 달라붙은 배를 보이는데, 모든 뱃살이 배꼽으로 빨려들 것처럼 주름져있었다. 할머니는 그 배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내 새끼들이 열 달이나 살았던 곳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 어머니의 뱃속이라 잖소. 그런 이 배를 어찌 애도 낳지 않은 낭자들의 매끔한 배와 비교한단 말이오!”

주름진 오른 손으로 쪼글쪼글 오그라든 배를 어루만지며 자랑하더니,
 
“그러면 다음에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치마끈을 배꼽 아래로 내리려 한다. 그것을 본 군장이 허겁지겁 달려가 할머니의 치마끈을 추겨 올리며

“올해의 미인은 호박꽃 할머니이십니다.”

할머니를 그 해의 미인으로 뽑았고 사람들은 손뼉치며 환호하는데,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들던 낭자들이 더 큰 박수를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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