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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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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1  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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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독락정의 오른쪽에 의병장 임대수의 공적비가 있다.

임대수가 명치제국의 침략에 맞서다 순국하신 의미를 보다 잘 알려면 ‘명치’라는 연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호란 군주가 바뀌는 해부터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는 ‘서기’를 사용한다. 왕조에서는 ‘무슨 왕 몇 년’이라 했다.

중국은 여러 왕들을 거느리는 최고의 왕을 ‘황제’라 했기 때문에. 황제가 즉위할 때마다 연호를 새로 정하고, 모든 왕들은 그것을 사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을 꾀한다는 의심을 받아,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왕 중에서도 연호를 사용한 왕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광개토왕은

“광개토대왕”
“광개토경호태왕”
“영락대왕”

등을 칭했는데, 그 중의 ‘영락’이 연호였다. 광개토왕은 스스로 중국 황제나 사용하는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천하를 호령했다.

단군조선을 이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건국될 때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었다. 중국은 일찍부터 주변국들과 교류하며 두 가지의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다”

나와 너를 차별하는 화이사상이고, 또 하나는

“잘난 내가 못난 너를 교화시킬 것이니 조공을 바쳐라.”

선진 중국이 미개한 주변국에 문명을 전해주는 대신 신하의 예를 취하라는 왕화사상이었다.
중국의 주변국인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은 조공을 바치고 벼슬을 받았다. 책봉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 주변국의 군주들은 ‘제’가 아닌 ‘왕’을 칭해야 했다.
 
그런데도 광개토대왕은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백제 신라나 고려의 왕도 사용하기는 했으나 광개토왕처럼 독자적이지 못했다. 조선의 고종과 순종도 광무와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나, 중국과 이간질시키려는 일본의 음모였을 뿐 조선의 독자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의 왕망이라는 자는 ‘한’이 쇠락하자 ‘신’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에 무리한 요구를 했으나 고구려가 따르지 않자, 고구려를 ‘하구려’로 불렀고, 고구려는 기회를 보아 전쟁을 하여 ‘신’이 망하고 ‘후한’이 건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개 넘치는 고구려였다.”

을지문덕과 연계소문이 수와 당을 멸망시킬 정도로 고구려는 독자적인 나라였으나 전쟁만 할 수도 없어, 조공하며 책봉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중국의 연호를 써야 했다. 해방 후에 ‘단기’라는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1962년부터 공식적인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이웃 일본은 좀 다르다. 우리가 전해준 문화로 개화하기 시작한 왜는, 우리를 본받아 중국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으려 하더니, 동해를 사이에 두고 있어 중국이 침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면서

“일본은 천황이 다스리는 신국이다.”

신이 다스리는 나라라며 천황을 칭한다. 그런 일본이 2019년 5월 1일부터 ‘레이와(令和)’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합하면 문화가 발전하고, 매화처럼 꽃피는 일본이 된단다.

원래 일본은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였는데, 군인들이 정치의 맛을 알자, 장군이 천황을 제쳐놓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다 침략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명치제국은, 장군이 아닌 천황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고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우리의 청춘 남녀를 징용이나 성노예로 끌어간 것도 모두 천황의 명령이었다.

그러다 미국의 원자탄을 맞자 어쩔 수 없이 천황은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고, 수상이 옛날의 장군처럼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침략한 것이 나빴다며 반성하는 흉내를 내는 것 같더니, 어느새 침략하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현재의 수상은 침략이 왜 나빴느냐는 말을 해대는데, 임진왜란을 일으킨 풍신수길이나 고종을 협박했던 이등박문과 똑 같다.

‘레이와’라는 연호를 고안한 사람은 고대가요를 연구하는 나카니시(中西)라는 학자다.

일본의 고대가요에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지은 노래가 많다. 특히 좋은 가요를 보면
 
“좋은 것을 보니 도래인이 만든 가요다.”

작품이 훌륭하므로 한국에서 건너온 도래인의 작품 같다는 말을 하는데, 나카니시도 그런 학자의 하나였다. 그는 연호를 고안한 뒤에

“한반도 등을 침략한 역사가 있다”

는 말을 하며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730년의 봄날에 오토모(大伴)라는 문학자가 매화꽃을 구경하자며 사람들을 불러

“초봄의 아름다운 때(令月)입니다. 공기는 청결하고, 바람은 부드럽고(風和) 매화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미인처럼 피었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시를 짓게 했는데, 나카니시는 그 냉월(令月)과 풍화(風和)에 근거해서 ‘레이와(令和)’를 고안했단다.

봄을 칭송하는 말을 골라서 고안했기 때문에 평화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 침략할 때마다 문학작품으로 국민을 선동했다. 지금도 정부가 전쟁을 하겠다면, 국민을 선동하는 글을 써대는 문학자들이 득시글하다. 그게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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