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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법사스님의 이야기’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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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6  09: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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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경남 양산시 영축산에 가면 우리나라 3대사찰(寺刹)중의 하나인 통도사(通道寺)가 있다.

이 사찰(寺刹)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 저 내려오는 법사스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조선의 정조 대왕시절에 이 통도사에는 훌륭한 스님 한 분이 계셨다고 한다.

그 스님이 아주 핏덩이 일 때 한 젊은 부인이 안고 와서는 주지스님에게

“스님 제가 이절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하겠습니다. 이 엄동설한에 우리 모자(母子)갈 곳이 없어,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원(哀願)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주지스님은 여러 스님들과 상의를 하게 되는데 그때의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많은 이 사찰에 살면서 헛소문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이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낳았다느니 아니면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보살은 아이를 일주문에 몰래 두고 떠나갔다고 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다른 스님이 데리고 와서 키웠다고 하는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할 때는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듣는 즉시 외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이 18세에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 천지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계실 때 어떤 노 보살님이 “도대체 저 법사스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 이시길래 아들을 저리도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라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보살이 “예~ 제가 저 법사스님의 애미 되는 사람입니다.” 그 한 마디가 순식간에 이 사찰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마침내 법사 스님도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경내의 스님들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였다.

“지금 저기에는 내 어머니라는 보살이 와 있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가 만나 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모두가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 하고 자랑을 하는 것이 어디 애미된 도리 입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불러서 혼을 내 주고 두 번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자.

법사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가 맞소?” “예” 제가 예전에 일주문에다 두고 갔다고 말하자 법사 스님이 “됐소.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 하지 말고, 그대가 법사 스님의 엄니이네! 라고 하는 그런 말 따위는 절대로 하지 마시오! 앞으로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것은 좋으나, 더 이상은 나를 아는 체 하지 말라”며, 어머니를 원망하듯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무렵 정조 대왕이 법사스님의 명성을 듣고는 “그토록 훌륭한 법사스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있을 테니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오.”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신하들이 다시 왕에게 그 어머니에 대한 자초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 대왕이 통도사의 법사 스님에게 편지 한통을 전했다고 한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여도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만큼 하리오. 내가 듣기로는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을 듯합니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 죽고 배고파 죽게 생겼으니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 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두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살리려고 두고 간 것이지 절대로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아든 법사 스님이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길을 나서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해가 거의 다 질 무렵, 한 집에 들어가서 혹시 이러 이러한 노(老) 보살이 이 부근에 산다는데 모르시요?

그러자 그 집의 노인이 나와서 언덕 밑의 집한 체를 가리키며 “저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가 않군요. 불이 켜 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있거나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롱불을 하나 빌려 숨이 목에 차도록 뛰어 갔다. 그리고 그 집안에 당도하니 인기척이 없어 법사 스님이 주인을 다급하게 불러 본다.

“주인장 계시오?” 아무 대답이 없자 법사스님이 방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 집어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법사 스님이 호롱불을 들고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니 어머니가 거의 죽어 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 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 스님이 어머니하고 부르자! 가물가물 죽어 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누구시오. 누구신데 나 보고 어머니라 하시오? 그 호롱불로 얼굴 좀 비쳐보구려.”

그때 법사 스님이 호롱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는 “아! 이젠 됐어요. 어서 양산 통도사로 빨리 가시어 더 많은 중생들에게 법문을 들려 주시요.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풀었다오. 어머니라는 그 말 한 마디 못 듣고 죽는 줄 알았는데”...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들쳐 업고는 양산 통도사로 뛰기 시작했단다.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 스님이 있는 정성 다 들여 미음을 쑤고 약을 달이어 그 어머니를 살리셨는데,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그곳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그때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제(祭)를 드리며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인가! 부모님이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일세! 어머님이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해가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이 살았을 땐 마음 든든하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

그렇게 마지막 법문(法問)을 마치자. 그의 어머니 음성이 다시 들리는데“내가 가는 길에 그 훌륭한 법문 감사하오. 부디! 좋은 법문 많이 하여 세상을 환히 밝히소서!”

이 법사스님의 훌륭한 법문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어느 90이 넘은 노인 어르신이 말하기를 “이날 이때까지, 어머니란 존재는 늘 그리움이었다.”고 한다. 요즘 부모와 자식간의 해(害)함이 많다 보니 그 ‘그리움’이 더욱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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