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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명불허전(名不虛傳)’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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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04  16: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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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기독교라는 용어는‘그리스도’라는 말이므로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기타 소수 종파까지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2015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3.9%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19.7%, 불교는 15.5%, 가톨릭은 7.9%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 총인구 약 5천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기독교는 약 1천만 명, 불교는 8백만 명, 천주교는 4백만 명이라고 한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호국불교로 자리매김을 해왔고, 개신교는 가톨릭보다 약 100년 늦은 1885년부터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 그리고 목회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그중에서도 가장 큰 종교로 부흥하고 발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어디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십자가(十字架)가 6만여 개나 된다고 한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세종시에서도 연기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십자가의 불빛이 전지역(465.26㎢)을 밝혀주고 있다.

이중에서 장로교단으로는 세상의 빛 교회(담임 전세광 목사), 성결교단 조치원 성결교회(담임 최명덕 목사), 침례교단 조치원 제일침례교회(담임 박수진 목사), 감리교단으로는 조치원 감리교회(담임 박화원 목사)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교회들이 3백여 개나 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숫자라 아니할 수 없다.

2012년 7월 1일 세종시의 문패가 달리고 부터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전환(轉換)되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농촌교회와 미 자립교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벽돌이 적게 쌓여있다 보니, 작은 교회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기에 오히려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교회들도 많다.

특히 세종시에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인 비암사의 인근에 전동면 송곡리라는 작은 농촌마을이 있다.

영적으로 척박(瘠薄)하기만 했던 이곳에 복음 들고 온 젊은 신혼부부가 있었다.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전도사로 부임한 이준호 목사는 서울의 큰 교회로부터 많은 초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약속이 있었기에 그는 굳이 몇 가구 안 되는 시골교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고, 30주년이 되던 2015년에 어느 기독교 월간지(月刊紙)에서는, 그의 목회간증을 10개월 동안 특집으로 실었다. ‘농촌목회 10계명(十誡命)’이라는 이 글이 5년이 지난, 2020년에 이르러 부활(復活)의 시대를 맞고 있다.

즉, 그의 삶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그는 부흥강사로 1990년도 이후부터 이미 널리 알려진 큰 목회자였다.

그를 겪어 본, 합동 측의 원로 장로는 그는 목회자로서의 자질과 인품이 너무 훌륭하다는 말을 종종했었고, 또 다른 합동 측의 원로 목사는 그를 유명한 부흥강사라고 소개하였다.

어느 외국인 노동자센터 소장은, 이 목사님은 선물이 있기만 하면 꼭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부천사(寄附天使)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또한 송덕성결교회의 어느 집사는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목사님이냐면 교회 부채(負債)가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교회 봉고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즉, 자기 개인의 오토바이와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했었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을 갈 때도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검소함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 예산으로 승용차를 사 준다고 해도, 끝내 사양(辭讓)하던 모습이 마치 작은 예수를 보는 것 같아, 그분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말로 자랑을 하고 있었다.

또한 어느 교단의 권사님도 이준호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뒤집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적인 카리스마가 대단하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특히, 그 교회의 학생회 출신 어느 목회자는 그 당시에 목사님 자제(子弟)분과 싸우다가 그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들만 꾸짖고, 자기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큰 인성(人性)에 감동되어 자신도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간증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그를 만나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준호 목사는 그의 저서(著書)인 ‘농촌목회 제1계명(誡命)’에서 이르기를, 1984년 9월 19일 부임 설교를 마치고 난 후, 귀신들린 여자가 있기에,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신 것 같이, 자기 자신 또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제2계명’에는 부임 후 만 3년 되던 해, 이미 병원에서도 포기한 위암 말기 환자를 치유한 사건으로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였고, 마을 주민들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신분임을 증거(證據)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여러 가정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교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목회자의 영적 권위도 높아지면서 목회자와 성도사이에 깊은 신뢰감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제3계명’에서도 어렵고 힘들 때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는 말씀으로 늘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4계명’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사람에게 도움을 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오직 기도로 하나님과 승부를 내면서 교회를 섬겨왔다고 한다.

‘제5계명’에는 고난과 고독과의 싸움에서 반듯이 이겨내기 위해, 늘 예수님에게 깊이 빠져 살았다고 한다.

‘제6계명’에서는 벽돌보다 사람에게 투자하다보니 ‘송덕교회’에서 35년 목회하는 동안 48명의 사역자(使役者)를 배출하였다는 것이다. 단, 어느 누구에게도 신학을 권유해 보지 않았다는 말을 곁들이고 있다.

‘제7계명’에서도 설교보다는 삶으로 늘 목회를 하였다고 한다. 즉,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목회를 하였다는 말일 것이다.

‘제8계명’에서는 지역사회에 늘 덕을 끼치고 사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잔디로 설치된 야외 예식장, 수영장, 우레탄으로 설치한 전천후 테니스장, 족구장 등을 이웃 주민들에게 늘 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9계명’에서, 그는 늘 기도하기를 작은 시골교회에도 선교와 구제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중국, 대만, 카자흐스탄, 우루과이, 카메룬, 필리핀, 베트남, 키르기스스탄, 미얀마에 지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후원하는데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10계명’에 이르러서도 그는 목회 중에서 자아(自我)목회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걸 알고 있기에 언제나 마음관리(분노, 혈기, 순결, 과욕)를 철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은,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듯하다.
요즘, 유행어가 되어버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이 송덕성결의 동산에서 만큼은, 무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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